한 인간이 내면의 자아를 완성해 가는 정신적 성장과정을 그린 헤르만헤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책입니다. 저자는 ‘진리는 가르칠 수 없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일생에 꼭 한 번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했던 시도가 바로 이 작품으로서 헤르만헤세의 세계관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헤르만헤세가 말하고자 하는 진리는 무엇인지 한번 알아볼까요?
[1] 주요 키워드 요약
사문들 곁에서
‘인간은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는 사실을 배우기 위하여 나는 오랜 시간을 허비해 왔고, 아직도 그 배움에 마무리를 짓지 못했네. 참으로 우리가 소위 ‘배운다’고 이름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나는 생각하네. 오, 친구여. 단 하나의 깨달음이 있을 뿐일세. 그것은 어디에나 있네. 그것은 내 속에, 너의 속에, 그리고 모든 존재의 속에 있는 것으로, 아트만이라는 깨달음이네. 그리하여 나는 이런 것을 믿기 시작했네. 이 깨달음 앞에서는 알고자 하는 것, 배운다는 것보다 더 경박한 적은 없다는 것을.
고타마
세존 자신이 체험하신 비밀, 몇십만의 구도자 중에서 오로지 세존께서만 체험하신 비밀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제가 세존의 가르침을 들었을 때, 생각하고 인식한 것은 바로 그 점입니다. 제가 편력의 길을 계속하려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다른 설법, 보다 훌륭한 가르침을 찾기 위해 떠나는 것은 아닙니다. 더 훌륭한 가르침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히려 모든 가르침과 모든 스승들을 떠나기 위해서, 그리하여 오로지 나 혼자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그렇지 못하면 죽으려고 떠나는 것입니다.
‘참으로 나 역시 그토록 자유롭게, 그토록 고귀하게, 그토록 내면을 향하고, 그토록 거침없이, 그토록 어린애 같고, 신비롭게 바라보고, 웃음 짓고, 앉고, 걸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참으로 자기 자신의 궁극의 심부에까지 파고 들어간 인간만이 그런 시선, 그런 걸음걸이를 지닐 수 있다. 그렇다, 나도 나 자신의 궁금의 심부에까지 찾아 들어가도록 하리라.’
각성
그를 에워싼 세계가 자기에게서 사라져 없어지고 오로지 혼자만이 마치 하늘에 뜬 외로운 별처럼 서 있던 그 순간, 냉혹과 절망의 그 순간 싯다르타는 이전보타 더욱 많은 자아를 가지고 굳게 뭉쳐서 위로 솟아올랐다. 그는 이것이야말로 각성의 초 후의 전율이요, 탄생의 마지막 경련이라고 느꼈다.
소인들 곁에서
당신이 배우신 것,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이란 무엇입니까?
저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기다릴 수 있습니다. 단식할 수 있습니다.
강변에서
오오, 이 도피, 자유로워진 상태란 얼마나 좋은 것이냐! 여기의 공기는 이토록 아름답고 순수하며 얼마나 마시기 좋은 것이냐! 내가 도망쳐 나온 곳, 그곳에서는 모든 것에서 향유 냄새, 향료 냄새, 포만과 타성의 냄새가 풍겼다. 이 부자의 세계, 식도락가의 세계, 도박꾼의 세계를 나는 얼마나 증오했던가! 이 끔찍스러운 세계 속에 그토록 오래 머물렀던 자신을 나는 얼마나 미워했던가! 나는 얼마나 스스로를 미워하고, 버리고, 해치고, 괴롭히고, 늙게 하고, 약하게 만들었던가! 아니, 일찍이 쉽게 그렇게 여겼듯이, 싯다르타가 현명하다는 망상을 다시는 갖지 않을 것이다!
세속적인 쾌락과 부유가 좋은 것이 아님을 나는 이미 어린애일 적부터 배웠다. 그것은 안 것은 이미 오래전이지만 그것을 체험한 것은 비로소 지금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그것을 안다. 오로지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나의 눈으로, 나의 심장으로, 나의 위장으로 안다. 그것을 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뱃사공
이 같은 청자에게 고백하는 것, 그의 상장에다 자신의 생애를, 자신이 추구한 바와 자신의 고뇌를 침전시킨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행복임을.
그는 강에게서 무엇보다도 듣는 법을, 조용한 마음으로, 영혼을 열고 기다리는 마음으로, 열정도, 욕망도, 비판도, 의견도 없이 경청하는 법을 배웠다.
강은 도처에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 근원에서나, 강어귀에서나, 폭포에서나, 나루터에서나, 여울에서나, 강에서나, 산에서나, 어디에든 동시에 있다는 것, 그리고 강에는 오로지 현재가 있을 뿐이라는 것, 과거의 글미자도 미래의 그림자도 없다는 것, 그런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그것을 깨닫고 나서 나의 삶을 바라보니, 그것 역시 한 줄기 강이었습니다. 소년 싯다르타는 한낱 그림자를 통해서만 어른 싯다르타, 노인 싯다르타와 떨어져 있을 뿐이요, 현실을 통해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싯다르타의 전생은 결코 과거가 아니었고, 그의 죽음과 범으로 귀환도 미래가 아니지요. 그 어느 것도 과거에 있던 것이 없고, 그 어느 것도 미래에 있을 것이 없는 겁니다. 모든 것은 현재 있으며, 모든 것은 본질과 현존을 지닐 뿐이지요.
모든 번뇌는 시간에 연유하는 것이 아닌가? 모든 고통과 공포는 시간에서 생기는 것이 아닌가? 인간이 이 시간을 초극할 수 있다면 시간을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당장의 세상의 모든 어려움과 반목은 없어지고 극복할 수 있지 않겠는가?
옴
비로소 싯다르타는 운명과의 투쟁을 그쳤다. 번민을 그쳤다. 그의 얼굴에는 어떠한 의지도 그것에 맞설 수 없는 깨달음의 열락이 꽃피어 있었다. 완성을 인식했다는 깨달음, 생성의 강, 삶의 흐름과 일치했다는 깨달음, 더불어 찾아온 괴로움, 더불어 찾아온 기쁨에 충만한 채 흐름에 귀의해버리고 단일에 속했다는 깨달음의 즐거움이.
고빈다
모름지기 누구나 구할 때에는 그의 눈이 다만 구하는 물건에만 쏠리어 아무것도 발견 못하고 아무것도 자기 안에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기 십상이지요. 그는 항상 구하는 대상만을 생각하고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그 목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구한다 함은 하나의 목적을 갖는 것이지요. 발견한다 함은 자유롭게 열려 있는 상태요, 목적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지식은 전달할 수 있어도 지혜는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지혜를 발견할 수 있고, 지혜롭게 살 수 있고, 지혜의 힘을 입어 열매를 맺을 수도 있고, 지혜를 써서 기적을 행할 수도 있지만, 지혜를 말하거나 가르칠 수는 없네. 이것이야 말로 내가 이미 청년이었을 때부터 여러 차례 예감했던 사실이요, 나로 하여금 승승에게서 떠나게 만든 것이었네.
어느 인간이나 어느 행위가 완전히 윤회이거나 완전히 열반일 수는 없다네. 어느 인간이나 완전히 성자이거나 완전히 죄인일 수는 없지. 그것이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우리가 시간이란 실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미망에 빠져 있는 까닭이네. 시간이란 실재하는 것이 아닐세, 고빈다. 나는 그것을 문득 체험했지. 이렇게 시간이 실재하는 것이 나니라면, 세계와 영원 사이의, 번뇌와 행복 사이의, 악과 선 사이의 틈도 또한 미망일 것일세.
모든 어린애 속에는 이미 백발노인이, 모든 젖먹이 속에는 이미 죽음이, 모든 죽어가는 존재 속에는 이미 영생이 깃들어 있지. 남을 보고 남이 자신의 길을 얼마나 걸어왔는가를 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불가능한 일이네. 도적이나 노름꾼 속에도 부처가 있고 브라만 속에도 도적이 도사리고 있는 법이네. 시간을 지양하고, 모든 있었던 생, 있는 생, 있을 생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가능성은 깊은 명상 속에 있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은 선이며, 모든 것을 완전하고, 모든 것은 범이라네. 그렇기 때문에 내게는 모름지기 존재하는 것은 선으로 보이며, 죽음은 삶으로, 죄악은 성스러운 것으로, 지혜로움은 어리석음으로 보이네. 모든 것은 그대 야만 하며 모든 것은 다만 나의 동의, 나의 호의, 나의 다정한 이해를 요구할 뿐이지. 그러니 내게 모든 것은 선이며, 그것은 나를 고무시켜 주되 나를 해하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네.
이 돌은 돌이요, 이 돌은 또한 동물이요, 또한 신이요, 부처라고. 내가 이 돌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것은 언젠가 이 돌이 이런 또는 저런 물건이 될 가능성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돌은 태초부터 영구히 그 모든 것이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돌은 돌이며 이 날 이 시간 돌로서 내 눈에 비친다는 것, 바로 그 점 때문에 나는 돌을 사랑하네.
나는 말은 사랑할 수 없네. 그 때문에 가르침이란 내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네. 가르침은 딱딱함도, 부드러움도, 빛깔도, 모서리도, 향기도, 맛도 가지고 있지 않지. 그것은 다만 말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네. 아마도 평화를 찾는 데 자네를 방해하는 것은 바로 이 말이라는 것일 걸세. 아마도 너무나 많은 말일 것일세. 해탈과 덕성, 윤회와 열반 또한 모두 말에 불과하다네, 고빈다. 열반이라고 할 수 있는 물건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 다만 열반이라는 말이 있을 뿐이네.
말보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하네. 그의 행위와 삶이 그의 말씀보다 가치 있으며, 그의 손의 움직임이 그의 의견보다 가치 있다고 나는 생각하네. 나는 말씀이나 사상 속에서 그의 위대함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행위 속에서, 삶 속에서 그의 위대함을 보네.
[2] 자배의 생각
1.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 삶을 살면서 인생은 과연 무엇인가? 나는 왜 사는 것일까?처럼 의문이 생길 때 읽으면 좋은 책입니다.
2. 추천하는 사람
- 삶에 대해서 의문이 있는 모든 사람들
3. 개인적인 책 평가
- 읽기 난이도 : 중 (읽기는 쉬운 편이나, 내용을 이해하기는 꽤 어렵습니다.)
- 책 소장도 : 소장할만합니다. (세계문학전집)
- 선물 추천도 : 추천할만합니다.
[3] 결 론
한 인간이 내면의 자아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을 동양적이면서도 불교적인 색채의 느낌으로 오묘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책입니다. 읽으면서도 도대체 그래서 저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를 끝날 때 까지도 궁금하게 만드는 명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각하고, 단식하고, 기다리는 것만을 할 줄 아는 싯다르타라는 사람의 인생을 읽으며, 본인의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내용은 조금 어렵지만 내면 깊은 곳에 작은 느낌, 깨달음, 새로운 생각 등이 저의 뇌를 간지럽힌다는 느끼을 주는, 영감을 주는 그런 책이라 많은 분들께 한번 경험해 보라고 해주고 싶습니다.
인사이트
1. 당신이 배우신 것,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이란 무엇입니까? 저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기다릴 수 있습니다. 단식할 수 있습니다.
2. 그는 강에게서 무엇보다도 듣는 법을, 조용한 마음으로, 영혼을 열고 기다리는 마음으로, 열정도, 욕망도, 비판도, 의견도 없이 경청하는 법을 배웠다.
3. 지식은 전달할 수 있어도 지혜는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을.
4. 모든 번뇌는 시간에 연유하는 것이 아닌가? 모든 고통과 공포는 시간에서 생기는 것이 아닌가? 인간이 이 시간을 초극할 수 있다면 시간을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당장의 세상의 모든 어려움과 반목은 없어지고 극복할 수 있지 않겠는가?
5. 말보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하네. 그의 행위와 삶이 그의 말씀보다 가치 있으며, 그의 손의 움직임이 그의 의견보다 가치 있다고 나는 생각하네.
우리 같이 즐겁고 행복하게 책 읽읍시다.
‘24년 6월, 자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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